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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t Night

w.보로

 

 

 

 순전히 우리끼리만 모인 졸업 파티는 그 어느 때보다 조용히 이뤄지고 있었다. 파트너로 입장하는 타 학년의 출입도 없고, 곧 다가올 졸업을 축하할 교수님들도 없는 외진 홀에서 우리의 파티는 좀 삐걱거리긴 해도 분명히 잘 진행되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간혹 누군가의 비관적인 말과 툴툴거림, 사소하게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와 그만 좀 밟으라는 비명이 한 곳에서 나오긴 했어도 말이다. 그 공간에서 이런 중대한 일로 우리가 빨려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그래, 솔직히 답하겠다. 절대로 우리에게 축하 인사를 건넬 리 없는 크레이튼 교수가 이곳으로 찾아오던 순간부터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당시 홀에 있던 7학년 전원은 제대로 뭔가 설명을 듣는다거나 다른 교수들에게 도움을 청할 틈도 없이 크레이튼 교수와 함께 찾아온 오러들의 인솔 하에 무언가에 쫓기듯이 마법부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마주한 것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위압적인 분위기의 차가운 재판장과 아니꼬운 시선으로 우리를 내려다보는 나이 든 마법사들. 늘어선 횃불의 불빛들이 그들과 우리의 얼굴 위에서 춤을 췄다. 비록 양쪽의 얼굴은 모두 차게 굳어있었다. 육중한 문이 소리를 내며 닫히고 법정의 불길한 소란이 서서히 잠든다.

 

  “지금부터 청문회를 시작합니다. 전원, 자리에 착석해주십시오.”

 

 반면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서서히 불안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마치 걷잡을 수 없는 화마처럼….

 

 대체 어떻게 일이 흘러갔는지 제대로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어쩌면 지금 기억하고 있는 것도 뭔가 잘못되었을지 모르지. 순식간에 우리의 죄를 읊던 총리와 사법부 장관, 그에 따라 우리를 흘겨보던 위즌가모트의 일원들, 누구 하나 섣부르게 나설 수 없던 상황에서 다급히 뛰쳐 온 안톤 교수와 상황을 증명해 주기 위해 달려온 증인. 만약 거기서 패트로누스를 부르지 않았더라면 거기에 있는 수많은 사람은 그대로 숨을 거뒀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당시의 우리는 모두 미성년 마법사였으므로 그저 법령을 어긴 죄인이 될 뿐이었다. 증인의 모든 설명을 들은 재판장은 혼돈의 시대라는 말을 입에 담았다. 어둠의 왕이 돌아왔다는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불손한 무리들이 우리들의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면 비밀 유지 법령을 존중할 수 있는 마법사가 사회에는 필요하다고. 모두가 어느 정도 끝을 예감한 표정이었다. 실형이 선고되지는 않겠으나…. 미성년 마법사가 섞여 있어…. 사상자의 수를 최소화했으므로…. 그런 소리 대충 귀에 들어왔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 순간 그곳에서 필연적으로 우리의 처음을 회상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처음 호그와트행 급행열차에 올랐던 날, 연회장 의자에 앉아 모두가 보는 한가운데 기숙사 배정을 받았던 일, 교수님들께 첫 수업을 받았던 날, 처음 과제를 하며 이야기 나누던 시간들.

 

 존경하는 교장 선생님과 이별할 수밖에 없던 날, 우리의 믿음을 저버린 교수를 대면하는 날, 믿었던 사람을 떠나보내는 날, 부외자 취급받으며 배척받던 모든 날, 그럼에도 참으로 행복한 일들이 많았다고 회상되는 우리의 7년이.

 

 

 모든 학생들이 짐을 싸고 집으로 돌아가 크리스마스 휴일을 맞이하기 위해 떠나는 그날 우리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 모든 짐을 꾸려 호그와트 밖으로 걸었다. 제대로 차림새를 정리할 정신도 없어 다들 졸업 파티를 나던 복장 그대로였고, 몇몇이 그 위에 대충 망토만을 걸친 것이 다였다. 호그스미드 역을 향해 가면서 우리는 서로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세스트럴이 이끄는 마차들은 이미 먼저 출발한 지 오래였기 때문에 바퀴 자국을 따라 참 오래 걸어야 했다. 숲길에서 우리의 위를 빙빙 돌던 부엉이를 보며 닉이 아울? 당신이에요? 하고 묻기도 했지만, 벤자민의 저지로 소년은 금방 입을 다물었다. 부엉이 역시 우리 앞을 한참 앞질러 어느새 보이는 호그스미드 초입의 커다란 나무에 앉아 깃을 고르다가 금세 날아가 버렸다.

 호그스미드는 녹턴 앨리만큼 소문이 빨리 도는 곳이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들이 날카롭게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을 인식했다. 차라리 말을 걸어줬다면 조금이나마 마음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이곳에서만큼은 투명 인간이 아니구나 하면서. 나아졌을지도 모른다.

 

 다른 학생들은 이미 먼저 출발한 열차를 타고 떠났으니 우리는 모두 기차역에 서서 다른 열차를 기다리면서 시간을 죽였다. 그런 와중 다니엘이 다음 열차에는 간식 카트를 이끄는 부인이 안 계시겠지? 하고 농담을 던졌다. 우리 모두 착잡함에 빠져있었지만, 애써 기분을 풀어주려고 한 친구의 성의를 무시하지 못한 몇몇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부인은 이미 앞 열차를 타고 가버리셨잖아. 쌍둥이 형제가 있는 게 아닌 이상 우리 차에도 탈 수는 없을걸.”

 

 니나가 그렇게 답하자 키득거리는 소리가 조금 더 늘었다. 이렌느의 날카로운 히스테릭에 금방 수군거림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지만, 그런다고 모두가 입을 다물지는 않았다. 엔시아나가 신경질적인 로랑을 다독이기 위해 아이, 왜 그러십니까요. 하며 다가갔다. 제리코와 클로이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킹스크로스 역에 도착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삐이이익—

 

 그리고 그때 열차가 들어오는 것을 알리는 휘슬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선로 저 멀리서 우리가 알던 것보다 조금 더 작고 튼튼한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저 멀리서 누군가 기차역으로 달려오며 우리의 이름을 불렀다. 로렌스 교수가 다급하게 달려와 얼이 빠진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이 이런 것 뿐이라 미안하다며 입을 열었다.

 “원래 타던 열차가 이미 떠났다는 사실은 모두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다시 돌아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텐데 여러분을 그만큼 기다리게 하는 건 차마 그냥 둘 수가 없어서요. 이건 보통 교수들이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먼저 호그와트를 오갈 때 쓰는 열차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보낼 수밖에 없지만, 여러분은 모두 호그와트로 돌아올 수 있을 겁니다.”

 교수님, 어떻게요? 누구 하나 그렇게 되묻지 않았다. 그저 지금은 마지막까지 우리를 위해 힘써준 그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되는 한 힘껏 마지막으로 끌어안아보는 일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호그와트 최악의 기수 그 이전에 우리를 칭할 수 있는 말을 분명히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유년기의 마지막 크리스마스 주간을 그렇게 엉망으로 끌어안고 우리는 모두 킹스크로스 역으로 향하는 열차에 올라탔다. 하늘에서 희미하게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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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t Day

 

 

 

 승강문이 밀려 열린다. 다시 킹스 크로스 역이다.

 우리는 각자 몫의 가방을 들고 낡아빠진 증기 기관차에서 내린다. 한밤중이고, 간간이 흩날리는 수준이었던 눈발은 이제 폭설이 되어 돔형 지붕 위에 소복이 쌓이고 있다. 덕분에 달빛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플랫폼은 어두컴컴하다. 마치 지옥 같다, 고 누군가 생각한다. 혹은 미래거나.

혹은 마음이거나……

 관리할 승무원이 없어─당연한 일이었다, 이번의 열차 운행은 통상 일정에서 아득히 벗어난 ‘전례 없이 특수한’ 경우에 해당했으므로─쌓인 눈은 녹았다 얼어붙기를 반복하며 승강계단에 얼어붙어 있었다. 가장 먼저 내린 벤자민 윈터가 가방을 받아 주었고 짜증스레 발을 내디딘 니콜라스 콜버트는 보기 좋게 미끄러져 바닥을 구를 뻔했다. 두 남자가 여러 개의 가방을 켜켜이 쌓아 정리하는 동안 다니엘 옌슨이 하이힐을 신은 여자애들의 손을 잡아 받쳐 주었다. 다행스럽게도 모두가 굽이 높은 신발을 신고 있어, 산뜻하고 끔찍한 기분으로 플랫폼에 내려설 동안 누구의 발도 젖지 않았다. 다만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을 뿐이다. 몸의 균형을 잃는 것은, 추락하듯 휘청거리는 것은 정말로 쉬웠다. 높이 나는 빗자루에서 굴러 떨어지는 것처럼.

 킹스 크로스 역의 플랫폼엔 조명이 없다. 온 사방에 암흑뿐이다. 쌓인 눈이 희미한 달빛마저 틀어막고 있어 서로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누군가 생각한다.

 우리가 승객의 전부였으므로 문은 금방 닫혔다. 잠금장치 걸리는 소리와 함께 내부의 빛이나 홧홧한 온기 따위가 모조리 가신다. 가라앉은 사방의 공기가 침묵과 뒤엉키며 물먹은 솜처럼 온몸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하필 한겨울이었고, 우리는 요란하게 차려입고 있어서─어깨를 드러내는 드레스나 얇은 연미복 재킷과 같은─체감 온도가 더 낮았다. 가슴이 깊게 파인 드레스를 입은 제리코 브래드버리는 엄지와 검지를 둥글게 모아 맨살에 달라붙는 목걸이 팬던트를 집어 떨어뜨린다. 그 옆에서 클로이 린튼이 “춥겠다, 제리코.” 한다. ‘총이라는 걸 맞는다면 꼭 이런 느낌이겠군.’ 누군가 생각했다. 누군지는 몰라도 멍청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었다.

 우리는 조형물처럼 서 있다.

 

 

 니콜라스 콜버트의 재킷이 니나 포베스에게 가고 바닥에 깔린 자신의 가방을 빼내던 벤자민 윈터가 무게를 못 이겨 휘청거리다 발목을 접질릴 뻔한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환기하려던 엔시아나 루스 터커의 목소리는 누군가의 “가지가지 한다, 씨발.” 하는 소리에 뚝 끊겨 버렸다. 다른 누군가 허공을 노려보며 한숨을 쉰다. 아주 길게. 무언가를 제지하듯이. (그런데 무엇을?) 몽글거리며 피어난 입김이 한참 허공을 떠돌았다. 차라리 바람이 불었다면 금방 흩어졌을 텐데, 이곳은 넓고 고요하고 유리 온실처럼 안전해서 누구도 무엇도 우리를 침범하지 않는다.

 우리는 침범당하고 싶었다.

 

 

 우리는 침범당하고 싶었고, 고통받고 싶었다. 우리는 파괴되고 싶었다. 증명받고 싶었다, 우리가 받은 대우는 부당한 것이었음을. 우리에게 더 나은 대우를 바랄 권리가 있고, 그러므로 우리의 명예는 회복될 당위와 가치가 있으며 우리의 삶은 수복될 것임을.

 그러나 누구도 우리를 천시하지 않는다. 걸음마다 바늘 같은 시선 수천 개가 꽂히던 호그와트에서와는 다르게.

 “이제 어떡하지.” 누군가 말한다. 혹은 중얼거렸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것은 외면할 수는 있어도 망각할 수는 없는 문장이라는 점에서, 응답을 바라지 않는 문장이라는 점에서 계시 같다. (“무슨 소리야?” 누군가 구태여 대답한다. 반응은 없었다.) 그러나 발신인이 중요하지 않다는 점에서는, 또한 같지 않다. 이렌느 로랑이 “언제까지 멈춰 서 있을 거야?” 쏘아붙일 무렵에 어렴풋이 들리던 열차의 우는 소리가 멈춘다…….

 우리는 동시에 뒤를 돌아본다. 마법처럼. 아가리를 완전히 다문 시커먼 고철 덩어리가 잠시 정적이었다가 기다린 것처럼 호흡을 재개했다. 오래된 외연기관이 토해내듯 증기를 내뿜었고, 곧 바퀴가 서서히 돌기 시작하며 레일을 긁었다. 거대한 차체가 철과 철이 맞물리는 끔찍한 소리를 질러 대는 동안 우리는 그것을

 보고 있었다. 기차가 출발하는 소리를 이토록 생경하게 듣는 것은 처음이라는 사실을, 곱씹으면서,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저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를 내팽개친 채 ‘돌아가는’ 호그와트행 열차를 본다. 유년기의 마지막 성탄 주간. 순전히 우리뿐이었던 졸업 파티. 호그와트행 급행열차. 도열한 연회장의 의자와 모두의 앞에서 이루어진 기숙사 배정. 첫 수업. 첫 과제. 마법.

 눈이 내리고 있다. 눈이. 세상의 모든 소리가 죄다 살라먹혀 온 사방이 고요하다. 열차가 느릿느릿 기다시피 하며 그을음 가득한 터널을 빠져나가는 동안 우리는 돌아갈 방법을 떠올린다. 밤이고, 세스트랄이 모는 마차는 없으며, 성탄 연휴였으므로 택시 따위가 쉽게 잡힐 리도 만무했다. 빗자루를 타고 날기엔 날이 너무 춥고 순간이동을 배우지 못한 채 쫓겨나 버렸다. 그러나 기념일의 야릇한 설렘과 고양감, 어렴풋한 환멸 따위에 한껏 취해 헤롱거리고 있을 부모형제에게 “당신 자녀가 보기 좋게 퇴학당했으니 지금 당장 킹스 크로스 역으로 데리러 오라”며 호출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갈 곳이 없으므로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모두가 표류당했으나 걸음은 올곧았다─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어디로 향할 수 있는지를 아는 사람들처럼. 하여간에 언제까지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무엇보다도, 이 플랫폼과 역사 본관을 연결하는 통로라면 단 하나뿐이었으니까.

 그렇게, 걸어서, 정거장 문이다. 문? 아니지. 적갈색 벽돌을 켜켜이 쌓아 만든 정거장의 벽이고 그것을 넘으면 ‘킹스 크로스 역’이다. 런던의 북부, 유스턴 로드에 위치한 이스트 코스트 본선의 시발역. 그곳엔 수많은 머글들이 돌아다닌다. 비합리와는 아주 일말의 연관도 관심도 없는 무고한 얼굴들을 하고. 우리는 우리가 겪은 것이 비합리인지 불합리인지를 가늠할 수 없어 그들 앞에서 수치스럽다. 우리는 우리가 ‘그런’ 대우를 받아 마땅한 존재가 아니라는 확신이 없어 그들 앞에서 어쩔 줄을 모른다. 우리는 어떤 벽도 완전하지 않으며 그러므로 들이받아 보기 전까진 그것이 벽인지 문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배우느라, 평생을 다 썼지만,

 우리는 여전히 모른다. 우리가 왜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를. 종신토록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가자.” 누군가 말한다. 입김은 더 피어나지 않았다. 기온이 높아져서는 아니었고, 그냥 찰나에 모두가 입김이 나오지 않게 말하는 법을 익혔기 때문이었다. 서슬 퍼렇게 내려 쌓이던 눈보라는 조금씩 잠잠해지는 추세다.

 힘 주어 가방을 들고 몸을 뒤로 물려, 얻어맞은 짐승처럼 달려나가 가장 먼저 통과할 자세를 취한 것은 놀랍게도 벤자민 윈터였다. 그의 뒤를 따라 우리는 일렬로 선다. 구빈원에 늘어선 거지들처럼. 회초리를 기다리는 아이들처럼. 하나, 둘.

 셋. 포장한 마음을 벽에 들이받는다. 캐리어가 아작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흩날리던 눈발이 완전히 그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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