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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

 

 

 

 

 도람은 다급히 문을 닫았다. 달칵 소리가 연달아 두 번 들린 직후 철컥이는 걸쇠의 걸림음이 이어진다. 함께 도망치던 상대는 문이 단단히 잠긴 걸 확인한 후에야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두컴컴한 내부, 그래도 어긋난 문의 틈새로 빛이 새어 들어와 상대의 실루엣을 확인할 정도는 되었다. 이 역시 빛이 막 차단되어 시야가 적응하지 못해 그렇지, 시간이 흐른다면 더욱 또렷해질 테다.

 다행인 점은 더 있었다. 겉보기에 둘이 들어갈까 싶어 보였던 이곳은 생각보다 넓어 크게 붙지 않고도 둘이 모두 설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직전에 숨은 드레스룸만큼 넓은 건 기필코 아니었다만, 상대의 체격을 생각한다면 비좁지 않은 것은 천운이었다.

 옷장 내지는 안 쓰이는 창고, 짐칸 등등의 추측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닌다. 손을 얼마 뻗지도 않았는데 매끈하게 코팅된 나무 판자의 손끝을 스치자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차가운 감촉에 금방 손을 떼어내며 도람이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괜히 저 때문에….”

 

 

 오랜만의 만남이 영 순탄치 못하다. 도람은 종일 있었던 추격전을 떠올렸다. 우연한 만남에 기뻐하는 것도 잠시, 이후로는 쭉 가족들을 피해 다니느라 둘은 차분히 대화할 시간도 갖지 못했다. 운을 본 건 좋았지만, 마냥 기뻐할 상황은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재회하고 싶지는 않았다. 도람이 상상한 재회는 조금 더 아름답고, 친구 같고, 화기애애하고, 이상적인… 그래, 이상적인.

 

“뭘 사과까지 해.”

 

 

 상대의 말마디가 사념을 깨뜨린다. 운의 표정은 옛날과 다를 바 없이 담담하다. 다짜고짜 도망치자던 말을 들었을 때 잠시 피어 오른 당혹감을 제외하면 내내 그랬다. 누가 본다면 일 년이 아니라 일주일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덕분에 도람도 차츰 긴장을 풀고 편안함을 내비칠 수 있었다.

 숨을 장소로 선택한 곳이 드레스룸이었던 것 역시 천운이었을 테다. 우연히 당도한 그곳에 각종 파티룩과 장신구가 널브러진 걸 발견한 도람은 운에게 변장을 제안했다. 그때도 운은 황당해 보였지만 순순히 따라주었다. 변장한 채로 돌아다니면서도 그의 태도는 여전했다. 와인을 마시며 도망치는 이유를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 자유를 좇고 있다는 해괴한 대꾸에 ‘왜 나까지….’라는 듯한 표정은 잠깐 지었지만, 그는 늘 그렇듯 본연의 담담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내가 운 없는 거야 하루이틀도 아니고.”

 

“운이 왜 없어요?”

 

“왜 없긴, 항상 그랬잖아? 시험만 쳤다 하면 계산 실수하고, 답안 밀려 쓰고. 가위바위보 같은 게임은 무조건 졌지. 추첨은 안 좋은 것만 걸려, 좋은 추첨일 땐 볼 것도 없이 꽝이었다고. 안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설마 까먹은 거냐.”

 

“아, 아뇨…….”

 

 

 도람은 고개를 내저었다. 까먹은 게 아니라요…~ 망설임이 묻어나는 말끝이다. 그녀가 반문한 이유는 운의 그러한 사건들을 잊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니, 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대부분 자신도 함께 겪은 것들인데 기억하지 못할 리가. 그럼에도 마냥 수긍하기만은 힘들었다.

 저도 모르게 반박거리를 찾으며 그녀는 손을 뻗어 상대의 손쯤으로 추정되는 곳을 붙잡았다. 이렇게 바깥 상황을 알기 힘든 어두운 공간에서 도람은 타인의 온기가 느껴져야 안심하곤 했다. 작년 이후 생긴 버릇이자 일종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였다.

 

 …그래, 그러고 보면 그 괴이한 사건에서도 운은 결론적으로 살아남았다. 정말로 운이 없었다면 그는 그때……. 도람은 잠시 떠오를 뻔한 어떠한 가정을 지워냈다. 그러쥔 손에 조금 더 힘을 주며 눈을 꾹 감았다 떴다. 아직 어둑한 시야 사이로 상대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래도 이번 수능은 괴, 굉장히 잘 보셨다고 들었는데요…?”

 

“만점 아니면 이상한 수준으로 공부했으니까 그렇지. 결국 만점은 못 받았지만.”

 

“수능 때 실수는 누구나 하는걸요…….”

 

 

 상대는 잠시 말을 잃었다. 대답이 가관이라 할 말을 찾지 못한 것에 가까웠지만 도람이 알 리는 마무했다. 곧 상대에게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꿍. 머리 어딘가가 꾸욱 눌린다. 하필이면 아픈 지점이 눌려 도람은 반사적으로 작게 앓는 소리를 내었다. 그 위로 운의 목소리가 겹쳐진다. 너,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그러게, 자신은 무슨 말을 하려고 계속 반박하는 걸까? 맞은 곳을 두 손으로 문질거리며, 도람은 이 상황을 어디선가 겪은 적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묘한 기시감. 자신은 그때도 운과 대화하고 있었다. 운과 대화할 때면 희한하게 이런 일이 잦았다. 자아 없이 타인의 말을 수용하는 건 한때 제 특기 중 하나였는데.

 

당신이 불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생각 하나가 불현듯 머릿속을 차지한 건 그때였다. 아, 늦은 깨달음이 뒤따른다. 어쩌면… 어쩌면 그녀는 눈앞의 이가 불운하지 않기를 바라 이러는 걸지도 몰랐다. 정확히는, 그가 자신의 불운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길 소망해서.

 운에게 연락하지 않은 반 년 동안도 도람은 종종 운의 행운을 빌었다. 언젠가의 대화를 돌이켰다. 너는 무사히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자기 자신은 빠져 있는, 당연하단 듯한 그 말 마디들. 그때에도 도람은 운에게 반박했다. 반박하지 않고서는 못내 참을 수 없을 감정이 밀려들은 탓이었다.

 그때부터였던가. 자신의 행운을 생각하지 않는 운을 대신해 도람은 그의 행운을 빌었다. 그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었다. 최악을 가정하지 않은 이는 들이닥친 현실에 좌절하지만, 그런 환경에서 자란 자는 아무리 거센 파도가 부닥쳐도 흔들리지 않는다. 불운하되 불행하지 않은 눈앞의 이는, 지운은 도람이 생각하기에 강인한 사람이었다. 때로는 그가 부러워질 만큼.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몇 번을 부딪히고 방해받아도 변함없기에 되레 그녀는 가끔 운이 위태로워 보였다. 위치는 견고할지언정 생채기는 남는다. 흔들리지 않음이 무너지지 않음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녀는 자신이 자신의 행운에 안주하지 않고 가족들을 거슬러 제 뜻대로 살아가는 것처럼, 운도 그의 불운에 체념하거나 타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변함없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변화를 꿈꾸고,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종래에는…… 당신도 당신의 행복을 그렸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이런 상황에 전할 말은 아닌 것 같아서, 도람은 그냥 웃어버리고 말았다.

 

 



갑자기 왜 웃어?
크리스마스라 그런가 봐요.
…그게 무슨 상관인데?
모, 모르겠어요…?
참 나, 바보냐.
에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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